어제 인터넷을 하고 있던 도중에 이런 뉴스가 뜨더군요. ‘북한, 서해NLL에 해안포 발사’
또다시 서해교전이 일어나는 것인가 싶더니 교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에 가까운 북쪽 해상 2곳에 해안포를 ‘훈련용으로’ 수십발을 쏘자 백령도 주둔 해병대가 날아오는 포탄을 향해 대공 경고 사격을 했다는 것이었어요. 북쪽에서는 이런 훈련은 연례적으로 계속되었다고 주장했다는데 이렇게 NLL 근처에다가 쏜 것은 처음이었다지요. 아무튼.. 백령도에 계시는 우리 해군장병들 초긴장상태셨을 텐데.. 휴... (나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화이링~~~!!! *^^*)
아무튼.. 이번 일로 국방비 증강에 강력한 근거가 되겠네요.. 그런데 국방비 증강을 위해 국가가 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요? 세금 걷는 것보다 빠른 방법이요.. 바로 돈을 찍어내는 거죠.. ^^ 옛날 옛적, 고대 그리스에서도 그랬습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경쟁관계였던 것은 정치체제가 달라서였습니다. 남과 북이 표면상으로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갈라져서 있는 것처럼요. 아테네는 민주정을 유지한 반면 스파르타는 과두정을 유지했습니다. 또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어서 경쟁했고요..
펠로폰네소스 전쟁
둘이 항상 갈라져 있던 것만은 아닙니다. BC 492년부터 BC 448년까지 지속된 페르시아 전쟁에서는 같이 협력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물리쳤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 전쟁 이후 다시 경쟁상태로 돌아갔지요. 그런데 아테네스가 이 전쟁을 통해 그리스 전체의 새로운 맹주로 떠오르게 되자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 간에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BC 440년에 그리스의 두 대표 도시였던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각자의 동맹국들과 연합한 전쟁을 가시화하였고 BC 431년 전쟁이 시작되었죠. 펠로폰네소스 전쟁입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진 가장 큰 이유가 역병이 돌아서라는 군요.. 마치 지금의 사스 같은 거요
Nicolas Poussin, Plague at Ashdod c.1630, Oil on canvas, 148X198㎝, Louvre
BC 404년까지 이어진 이 전쟁에서는 스파르타가 승리해 아주 잠깐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스파르타의 통치가 너무 강압적이어서 각 도시국가(폴리스)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고 코린토스, 테베, 아테네, 아르고스 등의 도시들이 페르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아 스파르타를 공격해 큰 타격을 입힌 코린토스 전쟁을 일으켰고, 그 이후에도 테베가 전쟁을 일으켜 결국 스파르타를 몰락하게 이끌었지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부터 고대 그리스 쇠망의 싹이 튼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 전인 기원전 440년에 만들어진 아테네의 주화입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되자 아테네는 동맹국들로부터 대량의 은을 거두어들였습니다. 국방비를 증강해야 하니까요.
BC 520년경부터 아테네는 일명 ‘올빼미 은화’라고 불리는 테트라드라크마를 발행하였는데, 주화의 앞면에는 ‘아테나 여신’의 두상이, 뒷면에는 아테나 여신의 상징새인 ‘올빼미’가 올리브 가지와 아테네를 뜻하는 문자의 첫 세 글자인 'AΘE‘와 함께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BC 490년경에는 아테네가 고대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승리한 것을 기리기 위해 주화의 뒷면에 초승달 모양을 추가로 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테네의 예술은 점점 고전주의 양식을 따라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테네 테트라드라크마는 고전주의 양식보다 오래된 고대 아르카이크 양식으로 발행하였습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지속되자 테트라드라크마의 디자인의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졌던 것입니다. 아테나 여신의 고귀함은 사라지고 올빼미는 점점 기울어진 타원형처럼 변했으며 머리주위의 깃털도 더욱 거칠게 묘사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
BC 406년에 이르자 아테네의 은이 거의 바닥이 나고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긴급조치로 동으로 만든 테트라드라크마를 발행하게 됩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테트라드라크마 동화를 소위 ‘필요에 의한 돈’이라고 부르며 테트라드라크마 은화를 발행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BC 403년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졌지만 BC 393년경 경제가 회복되자 다시 테트라드라크마 은화를 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새로 발행된 아테네 테트라드라크마 은화는 더 이상 아르카이크 양식을 따르지 않았고 아테나 여신의 눈도 아몬드형이 아닌 평면적으로 변했습니다.
BC 431년 이후 대량으로 발행한 테트라드라크마는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국가들에서 수세기 동안 통용되었고, 아테네의 테트라드라크마를 모방한 주화들도 생겨났습니다.
방대한 양의 주화가 나온 덕분에 현재까지도 대략 100,000개 이상의 주화가 남아있는데 분명 아테네 테크라드라크마는 당시에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을 것으로 추측되며, 그 인기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ps. 아래 있는 주화는 데카드라크마입니다. 데카는 10, 즉 10드라크마인거죠. 테트라드라크마는 4드라크마입니다. 보통은 테트라드라크마를 많이 썼고, 데카드라크마는 실질적인 최고단위 주화였습니다. 1990년 소더비 경매에서 $500,000 달러 (약 6억원)로 예상가가 매겨졌던 은화입니다. BC465년에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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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원형 화폐는 처음 봐요,,,
2010/02/22 19:12사진 좀 퍼가도 될까요?^^;;
2010/11/17 02:27This is a really good read for me, Must admit that you are one of the best bloggers I ever saw.Thanks for posting this informative article.
2012/05/05 15:12